라플란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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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어: Lapin Sota
스웨덴어: Lapplandskriget
독일어: Der Lapplandkrieg
영어: Lapland War
„Als Dank für nicht bewiesene Waffenbrüderschaft!“
"전우애를 발휘하지 않아줘서 참 고맙다!"
토텐코프 사단이 후퇴하며 무오니오(Muonio)[1]
마을에 남기고 간 표지판의 글귀
1. 개요[편집]
핀란드 북부의 라피 지역 일대에서 1944년 9월부터 1945년 4월까지 핀란드와 나치 독일 사이에 있었던 전쟁이다.
2. 상세[편집]
바그라티온 작전 이후, 제 몸 하나 간수하기도 어려워진 독일과 추축국들의 지원이 끊기며 단독적인 역량만으로는 계속전쟁을 지속하기 어려워진 핀란드는 독일과 연합하여 계속전쟁을 수행하던 리스토 뤼티 대통령을 만네르헤임으로 교체하면서 동시에 이전까지의 독일과의 동맹을 폐기하고, 소련과 정전협정을 1944년 9월 19일에 맺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카렐리야 영토와 핀란드 만 근방의 크고 작은 섬들을 소련에게 댓가로 지불해야했으며, 이후 미국 달러화로 배상금 3억 달러가량을 지불했다.
이로 인해 핀란드 지역에 주둔하던 독일 국방군과 무장친위대 부대들은 자작나무 작전, 북극광 작전 등을 통해 노르웨이 방면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소련은 만약 독일군들을 내쫓지 않는다면 소련군이 직접 개입하여 핀란드 내의 독일군들을 박멸하겠다고 협박과 회유를 가했으며 이에 핀란드는 독일군과 진주해오는 소련군 사이에서 교전을 막으며 온건하게 독일군의 후퇴를 종용하였으나, 독일군은 지속적으로 어디까지나 동맹국에 불과한 핀란드 지휘부는 자신들의 명령권자가 아니며 자신들은 핀란드에서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결국 그 과정에서 핀란드군은 독일군에게 발포를 하게 되고, 이것이 라플란드 전쟁의 배경이 되었다.
독일군은 후퇴하고, 핀란드군은 후퇴하는 독일군들을 쫓는 것에 주력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로바니에미에서 양측이 교전하게 된다. 핀란드군에 대해 잘 알고 있던 독일군은 핀란드군과 전투를 지속했고, 그 과정에서 독일군 지휘관이었던 육군 상급대장 로타르 렌둘릭 장군은 동부전선에서도 그러했듯이 로바니에미에서 민간인 학살을 수행함과 더불어 건물, 도로, 철도, 전선과 전화선 등을 보복을 위해 철저하게 파괴한 후에 철수했다. 이는 핀란드군의 진격을 지체시키려는 목적도 있었으며, 결국 독일군의 산악 사단들은 큰 피해 없이 후퇴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렌둘릭은 핀란드에서 저질렀던 약탈 및 파괴행위로 재판을 받지만 결국 무죄로 풀려난다.
이 전쟁의 결과로 완전히 파괴된 도시 로바니에미는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산타를 중심으로 하는 관광산업에 주력하였고, 현재는 대표적인 산타 마을이 되었다.
3. 평가[편집]
독일군은 큰 피해 없이 핀란드에서 퇴각하는데 성공했다. 핀란드는 소련의 요구대로 독일군을 자국에서 축출하는데 성공했으나 전쟁터가 된 라플란드 일대는 독일군의 초토화 작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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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핀란드와 스웨덴과의 서부 국경에 있는 북극권 위의 핀란드 북부에 있는 소도시.